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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시 2021-11-26 14:35:47
제목 [업계동향] WEEKLY BIZ 배터리를 지배하는 자, 세상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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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새로운 석유(new oil)다. 100년 된 공급망을 재편하고 산업 질서를 새로 확립하게 될 것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는 글로벌 배터리 산업에 대해 “전기차나 ESS(에너지 저장 시스템)뿐 아니라 각종 산업과 ESG(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 개선) 전략, 친환경 위주의 공공 정책이 결합하는 지점에 서 있다”며 이렇게 전망했다. 여기서 말하는 배터리는 한번 쓰면 버려야 하는 1차 전지가 아니라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며 반영구적으로 사용하는 2차 전지를 말한다. 배터리는 전기차와 ESS 외에도 무선 가전, 로봇, 사물 인터넷 등 코드리스(cordless)로 된 대부분의 4차 산업 상품을 움직일 필수품으로 꼽힌다. 배터리를 ‘미래 산업의 쌀’이라 부르는 이유다.

그래픽=김의균
그래픽=김의균

밝은 전망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통계 조사 기업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185GWh(기가와트시)였던 글로벌 배터리 수요는 2030년 2035GWh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연평균 증가율이 27%에 달한다. 배터리 산업의 양대 분야인 전기차 배터리와 ESS 시장은 각각 2025년 1600억달러, 2026년 106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런 추세라면 2030년엔 ‘현대 경제의 혈액’이라는 반도체 산업 규모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 산업의 왕좌를 차지하는 기업과 국가가 막대한 유·무형 이득을 쓸어갈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석유를 손에 쥔 국가들이 수십 년째 세계 경제와 국제 정치 무대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리적 환경이 크게 작용하는 석유와 달리, 배터리는 기술 전쟁에서 승리하면 파이를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기회를 잡으려는 경쟁은 더 치열하다.

배터리 시장조사 업체 B3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 기준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44.1%를 점유하는 ‘최강국’이다. 하지만 2위 중국(33.2%)의 거센 추격에 흔들리고 있으며, 일본과 유럽, 미국의 도전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 배터리 산업의 현재와 미래, 기회와 위기 요인을 WEEKLY BIZ가 진단해봤다.

◇가격으로 단숨에 중국에 추월당해

배터리는 안정성, 에너지 효율성, 가성비에 따라 값이 매겨진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건 리튬이온 배터리다. 리튬 배터리 양극과 음극 사이를 리튬이온이 이동하면서 발생시킨 전자의 움직임이 전기를 만들어낸다. 1991년 일본 소니가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이후 스마트폰과 전기차 등에 사용되며 2차 전지계의 대세가 됐다.

2차 전지 중 가장 시장이 큰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은 그동안 일본이 앞서가고 한국과 중국이 뒤를 쫓는 형세였다. 2019년 초까지만 해도 일본 파나소닉이 점유율 50%를 넘기며 1위를 지켜왔다. 그러다 한국 LG에너지솔루션이 지난해 처음으로 파나소닉을 추월해 1위가 됐다. 그대로 한국 배터리 전성기가 열리는가 했으나 금세 중국이 형세를 뒤집었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에서 중국 CATL이 31.2%로 1위에 올랐다. BYD(4위·7.9%), CALB(7위·2.9%) 등 중국 5사를 모두 합치면 점유율이 45.5%다. CATL은 지난해 점유율이 23.1%였으나 1년 만에 8.1%포인트 끌어올렸다. LG에너지솔루션(23.8%·2위), SK온(5.4%·5위), 삼성SDI(4.6%·6위) 등 한국 3사 점유율은 33.8%로 2위이지만, 중국과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추세다.

중국 업체들의 약진을 이끈 것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다. 가격 경쟁력으로 한국의 주력 상품인 ‘삼원계’ 배터리를 밀어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로 구성되는데, 한국 기업들은 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NCMA) 중 3~4가지 금속을 조합해 양극재로 쓴 삼원계 배터리를 주로 만든다. 그런데 배터리 안정성과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코발트 가격이 다른 금속을 다 합친 것보다 비쌀 정도로 고가인 게 문제다. 코발트는 니켈과 구리를 채굴할 때 나오는 부산물에서 추출되기 때문에 공급 불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높고, 전체 매장량 중 70%가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 있어 현지 정세의 영향도 받는다. 18일 현재 코발트 가격은 6만1550달러로 1년 전보다 90% 상승했다.

부담으로 다가오는 2차 전지 소재 가격
부담으로 다가오는 2차 전지 소재 가격

중국 업체들의 주력 제품인 LFP 배터리는 코발트 대신 가격이 저렴한 철·인산을 쓴다. 가격이 삼원계의 70~80% 수준으로 저렴하고 안정성이 높은 것이 장점이지만, 부피가 크고 에너지 밀도가 낮아 주행 가능 거리가 삼원계의 절반 정도인 게 치명적 단점이었다. 그런데 중국 기업들이 기술 개발을 통해 이를 7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그러자 전기차 1위 기업 테슬라가 전 세계 보급형 모델에 LFP 배터리를 장착하기로 했다. 벤츠, 포드, 폴크스바겐도 도입을 선언했다. 모두 최근 두 달 사이 벌어진 일이다. 배터리 비용이 전기차 전체 몸값의 30%를 차지하는 만큼 자동차 업체로선 가격 경쟁력을 위한 타당한 선택이지만, 한국 기업들로선 허를 찔린 셈이다. CATL은 테슬라에 이어 현대차에도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급하기 위해 한국에 지사를 설립할 것으로 알려졌다.

◇탈(脫)리튬으로 뒤집기 노리는 경쟁자들

한국과 중국에 밀린 다른 나라들은 ‘탈(脫) 리튬’을 통해 한판 뒤집기를 노리는 중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과 덴마크, 이스라엘, 독일 대학·연구 기관은 합동으로 마그네슘이온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리터당 에너지 밀도가 리튬 배터리의 2배 이상인 1000Wh(와트시)를 넘는 소재다. 아직 마그네슘이온을 운반할 전해액과 양극재 개발에 시간이 필요하지만, 성사된다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리튬보다 폭발 위험이 낮은 아연 배터리도 개발되고 있다. 싱가포르 과학기술청에 따르면 아연과 공기를 결합한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에너지를 5배 더 많이 저장할 수 있다.

미국도 ‘코발트 프리’ 배터리 개발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퀀텀스케이프 등 일부 업체는 글로벌 기업 후원을 받아 신형 배터리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일본 도요타 등도 액체 대신 고체를 활용해 이온을 옮기는 ‘전고체 배터리’를 목표로 연구 개발 중이다. 5분 만에 배터리 용량의 80%를 충전할 수 있고, 주행거리도 배 이상 늘어나 ‘꿈의 배터리’라 부른다. 안정성도 높다. 이들이 탈리튬에 성공할 경우 한국 기업들이 다져놓은 인프라는 한 방에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미국 배터리 기업들은 이제 시작 단계에 있고, 전고체 배터리는 2025년 이전에 상용화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 다른 복병 ‘소재 의존도’

한국 배터리 산업에 또 다른 위기 요인은 소재(素材)다. 핵심 소재인 배터리 4요소(양극, 음극, 분리막, 전해질) 시장에서 중국 점유율이 압도적이어서 한국은 소재의 60%가량을 중국에서 들여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NE 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양극재 시장의 57.8%를 점유한 것을 비롯해 음극재(66.4%), 분리막(54.6%), 전해질(71.7%) 등 전 분야에서 점유율이 과반이다. 이 때문에 중국이 수입을 규제할 경우 배터리 분야에서 ‘제2의 요소수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 배터리 산업의 중국 의존도가 너무 높아 무역 갈등과 지정학적 충격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할 정도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 규모, 소재 시장 점유율
글로벌 배터리 시장 규모, 소재 시장 점유율

◇ESS 발판 삼아 반격 나선다

한국 기업들은 대안 마련에 분주하다. 우선 중국 의존도가 높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소재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에 나선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부터 5년간 배터리 소재 산업에 6조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삼성SDI도 양극재 자체 생산 비율을 20%대에서 2023년 5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포스코는 호주에서 리튬 광석을 확보하고 국내에 수산화리튬 추출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LFP 배터리를 앞세운 중국의 도전에 맞서 코발트 함량을 낮춘 배터리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회사별로 대응 전략은 다르다. SK온은 LFP 배터리에 맞붙을 놓기로 했다. 지난 10월 실적 발표에서 “기존 삼원계 기술을 바탕으로 기존 LFP보다 충전 시간이 빠른 LFP 배터리 양산을 목표로 연구 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지주회사인 SK(주)는 중국 배터리 소재 업체와 손잡고 양극재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ESS 분야에 먼저 LFP 배터리를 적용하기로 했다. 전기차 배터리에선 중국 업체들의 공세가 워낙 거세 시장 진입이 만만치 않다는 판단 때문으로 알려졌다.

삼성SDI는 LFP에 진입하지 않고 삼원계 소재 중 니켈 함량을 크게 늘린 ‘하이니켈’ 배터리 개발에 주력하는 방식을 택했다. 삼성SDI 관계자는 “LFP 시장은 레드오션이라고 판단했다. 고급형에선 하이니켈로, 저가 시장에선 코발트를 다른 소재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니켈은 니켈 함량을 90% 후반대까지 끌어올린 배터리로 그만큼 코발트 비중을 줄일 수 있어 LFP와 가격 경쟁이 가능한 제품으로 꼽힌다. 조재필 유니스트 에너지공학과교수는 “한국 기업들이 하이엔드 배터리 기술에 특화돼 있는 만큼 하이니켈 개발에 성공하면 LFP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 외 ‘코발트 프리’ 기술에도 투자하고 있어 전망이 어둡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개념도, 글로벌 배터리 수요, 글로벌 ESS 설치 용량
리튬이온 배터리 개념도, 글로벌 배터리 수요, 글로벌 ESS 설치 용량

전기차 배터리에서는 중국에 추월을 허용했지만, 배터리 시장의 또 다른 축인 ESS 분야에서는 위상이 탄탄하다는 점도 한국 기업들의 강점이다. 지난해 글로벌 ESS 시장에서 삼성SDI가 사용량 6.2GWh로 점유율 31%를 기록하며 세계 1위를 지켰다. 그 뒤를 LG에너지솔루션(4.8GWh), CATL(2.8GWh), 파나소닉(2.1GWh)이 따르고 있다. 다만 중국 기업들이 전기차 배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두고 있다가 작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는 상황이어서 격차가 조금씩 좁혀지는 추세다.

ESS는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마다 빼서 쓰는 시스템으로, 탄소 중립을 이루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장치라는 점에서 전망이 매우 밝다. 풍력, 수력, 태양열 같은 에너지는 자연현상이나 기후변화로 인해 생산이 불안정하다는 단점을 갖고 있는데, 이를 보완하는 데 ESS를 활용한다. 바람이 센 날 전기를 생산해 ESS에 넣어뒀다가 잠잠할 때 꺼내 쓰는 식이다. 테슬라는 호주에서 풍력 발전, 태양열 발전 자원과 ESS를 연계해 대규모 배터리 팩을 구축하는 실험을 하고 있는데, 시범 설치 지역에서 최대 20%까지 전기 요금을 절약할 수 있었다고 한다.

IHS마킷 청정에너지기술 수석 애널리스트 조지 힐튼은 “ESS가 녹색 성장의 자극제로 꼽혀 세계 곳곳에서 이와 관련한 야심 찬 목표가 넘쳐 나고 있다”며 “장기간 강력하게 성장할 태세가 갖춰졌다”고 했다. 블룸버그NEF는 글로벌 ESS 용량이 2030년 1028GWh로 지난해 대비 30배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재생에너지 수요가 높은 미국과 유럽 지역이 기회의 땅으로 여겨진다. 컨설팅 기업 우드맥킨지는 “미국의 성장세가 가팔라 2030년 중국과 함께 세계 용량의 70%를 차지할 것”이라고 했다. 유럽 역시 주거용 ESS를 중심으로 빠른 성장이 예상된다.

현재 한국 기업들이 앞서 있는 분야인 만큼 이 시장을 어떻게 지키고 키우느냐에 향후 배터리 전쟁의 사활이 달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근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재생에너지 기업 테라젠이 추진하는 태양광 연계 ESS 프로젝트의 배터리 공급 사업자로 선정되는 등 국내 기업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전기연구원 정구형 에너지신산업연구센터장은 “국내 업체들의 ESS 기술력은 이미 세계 수준에 올라와 있지만, 수익 모델이 부족한 것이 단점”이라며 “단순한 해외 공략을 넘어 ESS를 활용한 수익 모델을 창출한다면 성장 폭이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2차 전지 가운데 가장 대중화된 전지다. 리튬의 이온이 양극에서 전해질을 통해 음극으로 가면 충전, 반대 흐름이면 방전되는 원리로 작동한다. 리튬을 기반으로 니켈이나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 등을 조합해 양극재로 사용한다. 한국 기업들이 주로 만드는 ‘삼원계’ 배터리는 세 가지 원소가 들어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LFP 배터리

리튬·인산·철 배터리. 한국의 ‘삼원계’에 대항하는 중국 배터리 기업의 주력 제품. 값이 비싼 니켈, 코발트 대신 철(Ferro)과 인산염(Phosphate)을 사용해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다. 제품 부피가 크고 무게도 무거운 데다 에너지 밀도도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다.

☞ESS

에너지 저장 시스템. 고정형 배터리를 활용해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빼서 쓰는 시스템.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 등 생산량이 일정하지 않은 재생에너지 발전의 약점을 보완할 수단으로 각광받는다.

출처: 조선일보 이태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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